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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미술사학

서양 미술사- ② 중세 미술 (1)

by olivia-2 2025. 2. 25.

고대 제국의 붕괴로부터 소위 로마네스크 미술이 생겨났던 10세기경까지의 사이를 넓은 의미의 중세 초기라고 부르고 있는데 로마제국이 쇠퇴하던 4세기경부터 게르만의 여러 민족이 각지에 침입하여 새로운 지배자로서 정착하게 되었고 로마제국 전역에 퍼져 있던 기독교는 여러 민족 사이에도 깊이 침투되어 있었다. 이교(異敎)나 아리우스파(4세기 전반에 동로마제국의 교회 내에 일어났던 이단파)를 믿고 있던 그들의 지배자도 57세기에 걸쳐 점차 기독교(가톨릭)로 개종하고, 마침내 프랑크 제국을 중심으로 서구적 기독교 미술이 형성되는 길이 열렸다.

고전고대의 미술과 중세 미술을 잇는 중간 지점에 있었던 메로빙거 왕조의 미술은 갈리아(프랑스), 게르마니아(독일), 비지고트(에스파냐), 브리타니아(영국과 아일랜드) 등이 각각 다른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구 로마제국의 지배가 강했던 지역에서는 고전 양식을 좇아 사실성이 강한 기독교 미술이 생겨나려 하고 있었으나, 알프스 이북이나 에스파냐에서는 북 또는 동에서 이동하여 온 게르만 민족과 선주민(先住民)인 켈트족이 가지고 있던 추상적인 형체나 순수한 장식성과 결부된 조형(造形)이 행하여지고 있었다.

8세기 말, 샤를마뉴(차를)는 스스로 서로마 황제의 왕관을 받아 고대 로마의 계승을 기대하며 동시에 문화적으로도 고전 문화의 부활을 시도하면서 서쪽의 그리스도 교권(敎圈)의 지도적 지위를 구축하였고 수도 아헨에서는 프랑크인 아인하르트를 비롯하여, 각지의 유명한 학승(學僧)이 모여 학예의 중심이 되었다. 이 학예운동에 조형예술도 포함되었다. 또한 궁정과 교회의 결탁(結託)이 성립되면서 기독교 미술은 신을 믿는 사람들이나 교단 가운데서 만들어지던 것이 봉건 제도하의 궁정이나 영주 등의 권력을 배경으로 만들어지는 것으로 성격이 바뀌어 갔다. 교회의 건축양식은 석재를 쌓아 올리는 로마 고대의 방법을 따라 주두(柱頭)가 있는 원주를 사용하였는데, 이미 목재 사용에 뛰어났던 북방 민족인 게르만인은 그 기술까지도 병용하여 지붕은 주로 바실리카 식 공법으로 지어졌다.

동로마 제국에서 성상 파괴 운동이 성행되고 있을 때 아헨에는 많은 종교적 의식에 쓰이던 물품들이 동방으로부터 수집되어 왔다. 또한 본문이나 표지에 화려한 장식을 한 사본은 라인강 유역과 북프랑스 일대에 여러 유파가 형성되어 제각기 독특한 표현이 행해지고 있었다. 이들 여러 유파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그리스도를 비롯하여 여러 성자의 도상화(圖像化)(종교, 신화, 관념 체계 등에서 특정한 의미를 지니고 제작된 미술품에 나타난 인물이나 형상)가 만들어진 것이며, 둘째는 동적, 사실적인 형체 표현(: 위트레흐트 대학 소장), 3차원을 의식한 볼륨 있는 채색법(: , 둘 다 파리 국립 도서관 소장) 등이 있다.

 

중세 미술- 종교적 색채가 강한 중세 미술

기독교가 유럽을 장악함에 따라 혹자는 예술에 있어서는 암흑기라고도 했다.

 

- 카타콤 미술(4c): 로마 초기 그리스도교들의 지하 묘지 카타콤의 벽과 천정을 장식

 

- 비잔틴 미술(5c~): 비잔틴의 미술은 고대 로마가 둘로 분열된 후 점차 쇠퇴하던 서로마 중심의 라틴 미술에 대해서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급속히 발달하였다.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기독교 허용을 공포하여 비잔틴의 미술은 초기부터 이미 궁정(宮廷)의 지지를 배후에 업은 기독교 미술로서 장대함과 호화로움을 특색으로 하고 있다. 지리적으로 동로마 제국은 기독교의 원천이 된 유대교의 신앙 지역이나 헬레니즘 문명의 중심지, 또는 동로마 제국을 자주 위협하는 사산 왕조의 페르시아 등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위치에 인접해 있었다. 따라서 이질 문명이 로마적 지중해 문명과 융합되어 동방 적 요소와 라틴적 요소를 가미하면서 헬레니즘의 전통 위에 새로운 양상을 더한 형태로 전개된 것이 비잔틴의 예술이다. 6세기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시대에 최초의 전성기를 맞아 갖가지 중요한 문화유산을 남겼으나, 89세기에 걸쳐서 성상 숭배에 관한 논쟁과 사라센인의 침입이 겹쳐 문화적으로는 혼미한 상태에 접어들었고, 그 후 10세기에서 12세기에 걸쳐서 한때 다시 흥행하기도 했었다.

동로마제국의 비잔티움 중심의 미술(5c~11c)로서 건축에 돔(Dome) 양식과 모자이크 벽화로 장식함. : 카타콤 벽화, 성 소피아 대성당, 모자이크 벽화

 

- 로마네스크 미술(11c~) : 10세기부터 12세기(지역에 따라서는 13세기 전반까지)경까지를 로마네스크 시대라 부르며, 11세기에서 12세기 초에 걸쳐 그 전성기를 이루었다. 광대한 프랑크 제국이 분열되고, 노르만인, 사라센인 등의 거듭되는 침입으로 서유럽에 혼란과 공백이 계속되는 사이에 각지의 봉건 제후는 세력을 넓혔고, 중앙집권제는 붕괴하였다. 미술 활동도 궁정 중심의 전 유럽적인 성격에서 각지에서 부흥한 수도원을 단위로 창조되는 식으로 성격이 바뀌었다. 따라서 저마다의 지방 양식이 로마네스크 미술의 대표적인 성격 중 하나가 되었다. 로마네스크란 원래 건축사상의 용어였다. 두꺼운 석조의 벽체, 아치, 돔을 가진 건축에 끼친 고대 로마의 영향을 크게 받아서 로마네스크(로마풍)라는 호칭을 붙였으나, 그 후 개념의 변화가 생겨 고대 로마의 전통을 가미하고 에스파냐를 거쳐 전해진 사라센 양식이나, 활발해진 수도원 상호 간의 교류, 십자군, 성지 순례 등을 통하여 전파된 동방 여러 지역의 양식 또는 카롤링거 양식, 비잔틴 양식 등이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생겨난 중세 중기의 양식을 가리키게 되었다.

서로마 중심의 미술로 어둡고 엄숙한 느낌이 드는 육중한 모습의 사원이 건축됨. : 피사 대성당, 산마르코 대성당

 

- 고딕 미술(12c~) :

12세기 말 북부 프랑스에서 발생하여 고딕 건축이 발달하면서 더욱 흥하였다. 프랑스에서 처음 유행한 이래로 서유럽 전반과 알프스 북부에 두루 퍼졌으며, 중세 유럽을 대표하는 미술 양식이 되었다. 지역 차이는 있으나, 고딕 미술 운동은 15세기경까지 계속되어 르네상스로 이어졌다.

로마네스크 건축에서 두껍고 넓은 벽면이 제거되고 크고 높은 들창의 형성이 가능해지자 스테인드글라스가 발달하였다. 주로 모양에 맞추어 자른 색유리를 H자형 단면을 가진 납 테에 끼워 그림을 조립하고 필요에 따라 쇠테로 보강하여 창으로 시공하였는데 이는 13세기까지의 주된 기술 양식이다. 이것은 게르만 켈트의 전통에 그 근원을 두고 있으며 긴 중세의 역사를 통하여 발달하여 온 소공예의 색 면 대비의 아름다움에, 투과광의 영롱함을 결부시켜 대예술로 발전을 본 것이다. 어두운 성당 안을 영롱하게 비치는 스테인드글라스의 색과 빛 속에 완전히 종교적인 분위기가 넘치게 되었다.

또한 사실적 경향의 발달과 더불어 순수한 공예는 점차 쇠퇴하나 사본류는 13세기의 파리를 중심으로 성행하였다. 주로 귀족의 주문에 의한 제작된 것이 많았으며 랭부르 형제의 작품인 는 그 좋은 예이다. 북프랑스를 중심으로 발달한 고딕 회화는 후에 플랑드르파에 큰 영향을 주었다.

도시의 발전으로 성당 중심의 문화가 도래, 밝고 경쾌하고 화려함. 수직선을 강조하여 건물 지붕에는 첨탑을 붙였고 창문은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하여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냄. : 노트르담 대성당, 울름 대성당, 샤르트르 대성당.

르네상스가 시작될 무렵 스테인드글라스 작가들은 고딕 대성당의 넓은 유리창에 갖가지 신성한 도상학 주제를 가득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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