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미술 (2)
- 르네상스 미술: 인본주의 사상의 르네상스
이탈리아는 당시 동방 무역을 통해서 이슬람 문화나 고대와 고전의 학문·예술 등이 유입되고 고대 로마의 유적·유물을 접하는 기회가 풍부했다. 따라서 시민계급에 의해 중세 유럽의 신 중심적 사고에 대체되는 고대 그리스·로마의 인간 중심적 사고가 팽배해졌으며, 차안적(此岸的)·개인주의적이며 현실주의적인 생의 약동에 찬 문화가 시작되었다.
즉 고대 그리스, 로마 문화를 재생, 부활한다는 이탈리아 중심의 문화 혁신 운동이며, 신(神) 중심의 미술에서 벗어나 인간에 대한 자각으로 인간성을 회복하려는 15~16세기 문예부흥 시기의 미술이다.
르네상스 미술은 그리스·로마 신화를 우아하고 아름답게 표현하는 원근법이 강조되었으며 크게 세 단계로 분류한다.
초기 르네상스 : 건축에서 알베르티, 브루넬레스키, 조각에서는 기베르티, 도나텔로가 회화에 있어서는 마사초에 의해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이 이루어졌다. 피사넬로는 국제 고딕 양식을 베네치아에 가지고 가서, 우아한 성모자(聖母子), 공상적인 의상, 우화 동물 등 장식 문양 표현이 북이탈리아에 퍼졌다. 또한 마솔리노와 같은 화가가 베네치아에 머무르면서 신경향의 양식도 전파하였다. 필리포 리피, 우첼로, 카스타뇨 등 피렌체의 화가들은 북이탈리아에서 한때 활동을 하였으며 특히 조토가 스크로베니 경당에 프레스코화를 그렸고(1306), 도나텔로가 그곳에 10년간 머물면서 산토의 주제단(主祭壇)과 가타멜라타 장군 기마상을 제작한 일은 마사초에 이어 초기 르네상스의 중요한 화가인 만테냐에게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예: 티치아노(플로라), 지오토(성모대관), 마사초(성 베드로), 반 아이크 형제 (니콜라 로랑의 성모상) - 유화 물감 발명
15세기 르네상스: 피렌체파는 14세기로부터 16세기에 걸쳐 이탈리아의 피렌체를 중심으로 하여 르네상스 미술의 주류를 이루었다. 특히 회화에서는 주지적 합리주의(主知的合理主義)·조형적 형태주의(造形的形態主義)가 그 특징이다. 주제에 관련이 있는 것만을 단순화하고, 또 이를 극적으로 묘사함으로써 ‘공간구성은 화면 안의 통일이다’라는 고딕과는 다른 형식의 회화를 만들어냈다.
예: 이탈리아의 피렌체와 베네치아 중심의 작가 도나텔로(가타멜라 장군), 안젤리코(성모상), 보티첼리(봄, 비너스의 탄생)
16세기 르네상스: 성기 르네상스에 완성된 고전주의 예술의 뒤를 이어받아, 거의 1520년경~ 17세기 초반에 걸쳐서 주로 회화를 중심으로 매너리즘이 유행하였다. 극도로 세련된 기교, 곡선을 많이 쓴 복잡한 구성, 비뚤어진 원근법 등을 이용한 뜻하지 않은 구도, 명암의 대비나 복잡한 안길이의 표현에 의한 강렬한 효과, 환상적인 세부, 때로는 부자연스러운 비율, 현실과 동떨어진 색채 등을 특색으로 하며, 복잡한 우의적(寓意的), 추상적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양식은 라파엘로를 시발점으로 하여 미켈란젤로의 완성된 힘찬 표현에 대한 경외, 뒤러의 작품을 통해서 전해진 북방 고딕의 강렬한 표현주의의 전통, 황제 카를 5세의 군대에 의한 '로마의 약탈'(1527)이나 종교전쟁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혼란한 시대 특유의 사회적 불안, 퐁텐블로의 프랑수아 1세나 피렌체의 코시모 대공을 비롯해 많은 예술 애호가 군주의 적극적인 보호정책을 통해 발전할 수 있었다.
예; 레오나르도 다 빈치 (모나리자, 최후의 만찬), 미켈란젤로(피에타, 다비드상, 최후의 심판,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 라파엘로 (성모상, 성모자, 아테네 학당), 브라만테(산 피에트로 대성당), 뒤러 (자화상), 브뢰겔 (결혼 잔치, 농민의 춤)
*초기 르네상스의 대표적 화가와 작품
- 마사초(Masaccio (1401년 12월 21일 ~ 1428년) 초기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의 화가
· 생애: 마사초는 1401년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 산조반니발다르노에서 공증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5살이 되던 해 아버지가 사망하자 그의 어머니는 늙은 약방 주인과 재혼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의 마사초의 성장 과정에 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남아 있는 문서상의 기록으로는 1422년 마사초는 당시 피렌체 화풍을 이끄는 메디치 화가 조합에 가입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미술에 대한 열정이 지나쳐 외모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지저분한 톰'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1423년에서 1425년 사이에 마사초는 많은 인물화와 프레스코, 그리고 성당의 제단화를 그린 것으로 추측된다.
미술사가들은 마사초의 프레스코, 특히 마솔리노와 함께한 산타 마리아 델 카르미네 성당에 있는 브란카치 기도소(Cappella Brancacci)의 구약 및 신약성서의 내용을 주제로 한 프레스코를 르네상스 미술의 시초라고 평가한다.
원근법과 명암법
마사초는 젊은 시절 피렌체에서 조토의 작품을 모사 하면서 시간을 보냈는데 브루넬레스키와 도나텔로를 사귀게 되면서 원근법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배우게 된다. 또한 1423년에는 마솔리노와 함께 로마로의 여행을 통해 고대 로마, 그리스 작품에 영향을 받게 된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화려한 장식의 고딕 양식에서 벗어나 좀 더 자연스럽고 사실적인 묘사에 치중하게 된다. 또한 브루넬레스키가 원근법 원리를 밝혔으나 회화보다는 성당의 돔을 건축하는데 몰두 중이었기 때문에 자신이 발견한 선 원근법을 회화에 적용할 생각까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마사초는 이 원리를 풀어서 자신의 그림에 적용하였다.
☞ 산타마리아 노벨라 성당의 성 삼위일체.
대좌 위에 하나님이 앉아 계시고 (성부) 그 아래 예수께서 못 박혀 계시며 (성자) 그리고 그 사이를 잇는 하얀 비둘기(성령)를 표현. 기독교의 삼위일체를 그림으로 표현한 작품이며 아래 왼쪽은 성모마리아 오른쪽엔 성 요한이 앉아 있다. 그리고 아래 작품 제작의 기부자로 추정되는 인물들이 있다. 이 벽화는 르네상스 시대 회화의 분기점이라 할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다. 높이 6미터에 달하는 벽화를 통해 한 번도 예술가들이 구현하지 못한 완벽한 환영(illusion)을 구현했다. 이와 같은 그림의 주제와 표현 방식도 놀라웠지만 사람들은 착시현상에 더 놀랐다. 그림을 보다가 공간 뒤쪽이 진짜가 아니라 그림이었다는 것을 알고 놀라는 것이다. 제잔 뒤쪽이 모두 그림으로 사람들은 그것을 확인하려 했다. 기계나 건축물을 설계하듯이 소실점의 정중앙에 못을 박아 선을 그어가며 정확한 수학적 계산을 통해 환영을 구축했다. 그 후 파울로 우첼로는 원근법을 배운 후 밤낮 원근법을 그리는 연구를 했다. 르네상스 회화의 판도는 마사초 이후 완전히 바뀌었다.
-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본명: 알레산드로 디 마리아노 필리페피
출생: 1444년경, 피렌체
사망: 1510년 5월 17일, 피렌체
국적: 이탈리아
대표작: 봄, 베누스의 탄생, 동방박사의 경배
보티첼리는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 화가로, 우리에게 봄(프리마베라), 비너스의 탄생 등으로 유명하다. 미술사가 조르조 바사리는 그를 '비범한 두뇌'와 '강한 탐구심'을 지닌 화가라고 평가했다. 생전의 유명세를 생각한다면 불가사의할 정도로 생애나 작업 방식 등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의 작품들은 다양한 도상학적 의미를 품고 있어 많은 학자에 의해 끊임없이 연구되고 있는데, 이 때문에 그는 서양 미술사에서 '성스러운 괴물'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보티첼리는 '작은 술통'이라는 의미로, 작은 술통처럼 뚱뚱했던 형의 별명에서 따온 별칭이라고 한다(한편으로는 그가 어린 시절 수업받던 금 세공사 장인의 별명이었다고도 한다).
15~16세기 이탈리아 피렌체의 주요 교회와 예배당에 종교화를 그린 화가로 주요 작품은 '비너스의 탄생'. 초기 작품은 스승인 프라 필리포 리피, 마사초,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의 영향을 받았다.
전성기로 접어들며 선명한 색채와 사실적인 세부 묘사, 부드러운 표현이 특징적으로 드러났으며 말년에는 피렌체의 거의 모든 교회로부터 작품을 의뢰받아 시스티나 예배당의 장식에도 참여했다. 보티첼리는 다음 세대의 르네상스 거장들에 가려져 몇 세기 동안은 소홀하게 평가되었지만,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등장한 보티첼리 양식 분석들은 현대 비평의 기초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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